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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자립주거贅?성공인가 실패인가

2004-06-10
작성자 작은자리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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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흥 ‘복음자리’ 마을
“시흥으로 오는 길에 소사 3거리를 지날 땐 애들이 막 울더라고…. 이제는 남의 집에 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적잖이 기대하고 왔지만, 허허벌판에 아무것도 없는 처지니 막막하기만 했었지.” 지난 3일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복음자리’ 마을에서 만난 김대석(69)씨는 1977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살다 재개발에 떠밀려 이곳으로 옮겨오던 때를 떠올렸다. 그의 가족 6명은 작고한 제정구 의원과 철거민의 아버지로 알려진 정일우 신부를 따라 양평동 판자촌을 떠나 이곳에 정착했다. 철거 보상금으로 받은 20만원이 가진 돈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평당 7천원의 땅값에 건축비 8만원이면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곳으로 왔다.
“그때는 철거민이다, 이주민이다 부르는게 그렇게 싫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고 누구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없어.” 2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더 이상 철거민이 아니다. 20대 초반부터 목수로 일해온 김씨는 일자리를 구하러 인천이나 부천까지 나가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거리도 안정적으로 생겼다. 무엇보다 살 집이 마련되자 살림도 조금씩 나아졌다. 복음자리에서 자란 네 자녀는 모두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

김씨의 ‘성공’은 제 의원 등 빈민활동가들과 주민들이 함께 흘린 피땀이 없었다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77년 4월 170가구가 도착했을 때 이곳은 논밭뿐인 허허벌판이었다. 이들은 땅을 직접 일궈 집터를 만들고 손수 벽돌을 찍어 집을 지었다. ‘내집’을 갖게 된다는 생각에 모두 행복했다. 목수였던 김씨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품을 들였다. 집을 짓는 동안은 천막을 지어놓고 생활했다. 같은해 말 추첨을 통해 집을 받았다. 넓은 집은 아니었다. 김씨 가족 6명은 대지 10평, 건평 6평에 방 2개와 다락이 있는 집에 옹기종기 모여살았다. 아이들이 자라나자 방을 늘리고, 작은 거실도 만들었다.

처음엔 170가구였다. 허허벌판에 집짓고 행복을 알아가던 때…
그뒤 27년 주변은 슬럼으로 바뀌고
머잖아 이곳도 재개발 빈곤층 주거문제 매듭이 안보인다
집을 갖게 된 주민들은 집집마다 돌아가며 잔치를 벌였다. 모두가 한 가족이었다. 집을 짓는 동안 크고 작은 다툼은 있었으나 주민 총회와 마을 잔치 등을 거치면 앙금은 사라졌다. 집짓기는 공동체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모든 주민이 함께 힘을 모아 공동 화장실과 우물, 마을회관 등 함께 쓰는 시설을 만들었다. 경제 공동체도 만들어졌다. 제 의원은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어 주민들이 고리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신협 조합원은 6500명이 넘는다. ‘복음자리 잼’으로 유명한 아름농장과 한우협동조합 등 다양한 생산공동체도 만들어졌다. 장학회도 생겨났다. 주민 1인당 500원씩 모아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를 보탰다. 해마다 4월엔 입주기념식도 열렸다. 행사가 아니라도 이웃끼리 술잔 나누기는 일상이었고, 아이들은 형제처럼 잘 어울렸다.

자활공동체는 점점 커갔지만, 살림이 나아진 이들은 ‘복음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 사람들 중에 절반도 안 남았어. 열심히 돈 벌어서 더 나은 데로 나간거지. 난 땅 밀어서 직접 집 지은 사람이라 떠나지 못하고 있어.” 김씨와 함께 목수일을 했던 안상균(69)씨는 이렇게 말했지만,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마을에 재개발 바람이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난 3월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됐고, 머지않아 아파트촌이 된다. 대목을 노린 부동산 중개업소도 5곳이나 들어섰다. 안씨는 기대와 걱정이 겹쳐 마음이 뒤숭숭하다.

김씨와 안씨 등 마을 주민들은 2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복음자리’를 일구고 키워냈다. 재개발과 강제철거로 빈민들을 몰아냈을 뿐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던 정부에 맞서, 안정된 주거지만 확보되면 정부 지원에 기대지 않고도 자립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복음자리의 실험은 아직 미완성이다. 주거환경은 날로 뒤떨어지고 있고, 외국인 노동자 등 가난한 사람들은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복음자리터는 재개발이 되지만 주변 마을은 ‘슬럼’으로 바뀌고 있다. 풀어내야할 문제는 수두룩하다. 빈곤층 주거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나왔으나 매듭은 아직 보이지 않는 듯하다.


[한겨레 2004-06-09 17:37]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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